품격있게 말하는 법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사소하고 가벼운 대화부터, 업무상의 이메일, 대중들 앞에서의 연설 또는 청중들 앞에서의 강연이나 스피치. 유튜브 앞에서의 말하는 연습 등이 늘 일상생활 속에 있는데도, 말하는 것은 어렵고 더 품격 있는 말하기란 무엇인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읽어두었던 2017년 출간된 ‘말의 품격’이라는 책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기자 출신으로, 대변인 활동도 했다고 하네요. ‘언어의 온도’를 직접 만들고 출판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을 담은 말의 품격! 작은 한 권의 책에 인상 깊은 구절들이 많아서 메모를 해둡니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 구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 人香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 dean_hinnant, 출처 Unsplash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머무는 동안 ‘운주당’ 이라는 개인 집무실 겸 독서 공간을 이용했다. 본래 ‘운주’는 산가지 (길흉화복을 점치는 나무로 된 도구)를 움직인다는 뜻인데, 당시 군인들 사이에서는 전장에 나가기 전에 전략을 마련한다는 이미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순신 장군은 어떤 일을 도모했을까?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한자어를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유독 ‘화’, ‘의’, ‘론’ 등의 한자가 자주 등장한다.

즉, 이순신 장군은 참모진들과 자주 ‘대화’하고 ‘의논’하였으며 ‘토론’도 즐겨 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운주당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매일 밤 건물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요즘으로 치면 24시간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인 셈인데, 출입이 자유로웠으며 중간급 간부는 물론이고 계급이 낮은 졸병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휴가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바캉스 vacance 는 ‘텅 비어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 vacatio 에서 유래했다. 

바캉스는 무작정 노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일이며, 진정한 쉼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쉼이 필요한 것은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게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제승지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다. 

지휘관의 전술과 부대의 사기, 군사 정보, 준비 태세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경우에 따라 승지형보다 전쟁의 승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순신 장군은 ‘제승지형’에 능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운주당에서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달하기보다 자신의 입이 아닌 귀를 내어주면서 다양한 정보를 수용했으며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차분히 전쟁에 대비했으니 말이다. 

상대를 먼저 공격하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의 말은 물을 닮았다. 

천천히 흐르면서 메마른 대화에 습기를 공급하고 뜨거운 감정을 식혀준다. 언행과 행실에 수기가 깃들었다고 할까. 그런 언어는 내 귀로 쉽게 흘러들어 오고, 그런 행동은 내 망막에 또렷하게 새겨진다. 


바야흐로 히틀러가 유럽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넣던 시기. 조지 6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선포를 앞두고 라디오 연설에 나선다. 

대국민대담화를 위해서다. 라이오넬은 바짝 긴장한 조지 6세를 다독이며 당부한다. 

“차분히 친구에게 말하듯 하세요.” 

전 국민에게 전하는 연설을, 그것도 전쟁 참전 선언을 친구에게 말하듯 하라니… 하지만 그 당부의 무게와 울림이 범상치 않다. 로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 명의 친구에게 진실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마음으로 수천만 대중에게도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겁니다.”

같은 말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온도와 무게가 달라진다는 이치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내팽개쳐두는 것도 곤란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감정과 생각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순간, 표현의 미숙함으로 진심을 전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도 없을 테니까. 물론 진심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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